묭쓰네 마음놀이터

1부 모든 상실에는 의미가 있다.

책 내용

1장 의미 찾기란 무엇인가?

내가 모든 삶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 어머니에게 이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한다면 이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에게 고통에서 빛을 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이기도 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슬픔마저도 고귀해지는 순간이 오면, 그 여성도 더 이상 상처 받는 삶을 원치 않을 것이다.
상처 받고 싶지 않다는 열망이 아주 간절해질 것이다.
깊은 공허함이 찾아올 것이다.
사랑했던 자식과의 유대감이 엷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유대감의 영역이 커지면서 고통의 영역이 줄어들 것이라는 의미이다.
고통을 비집고 생겨난 작은 틈을 통해 조금씩 의미를 찾아나가게 될 것이다.


고통, 죽음, 상실은 결코 좋은 감정을 선사하지 않지만 살다 보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하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보다는 외상 후 성장(PTG)이 더욱 크게 일어난다.
나는 슬픔에 빠진 사람들과 끊임없이 일하고 요양 병원과 말기 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면서 이 사실을 확인했다.
어디에서 찾건 의미는 중요하며 소중한 치유제가 된다.


제인이 그러했듯 상실에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물론 의미를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 수도 있다.
다른 누군가가 의미를 찾도록 돕는 일 역시 그렇다.
하지만 찾으려고만 한다면 의미는 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어떤 방식으로든 넘어지고 무너진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일어나서 어떻게 의미의 조각들을 되맞추느냐다.


(책 내용 더 있음..)


내 감정/느낌

모든 건 다 때가 있고 사람이 개인마다 속도가 다르기에 변화의 시기는 다 다르다.
사람마다 때로는 더딜 수 있고, 때로는 빠를 수 있다.
내가 찾은 의미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건 폭력이라는 말에 깊은 동의를 한다.
기고 있는 아가에게 사람은 결국에는 걷는 거라며 어서 걸으라고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떠나감은 여전히 과거에 상대를 사랑했었음을 인정하고 현재는 함께 할 수 없음으로 오는 상실감과 그 시간의 무게만큼 없어진 허무함을 내려놓는 것이 아닐까?


고등학교 동창이였던 그 아이는 나에게 입버릇처럼 베프라고 말했다.
때로는 시간을 쏟으며, 때로는 함께 세상을 구경하고 시간이 맞을 때면 찾아가며 차곡차곡 추억을 쌓아갔다.
그 아이와 첫 해외여행지였던 괌.
함께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에서 혼자 화상을 입었다.
한 달간 입원 기간 동안 그 아이는 자차가 있었지만 한번도 병문안은 오지 않았다.
정작 그 한 달간 가깝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은 위로를 해주었으며 방문을 했다.
그 땐 모든 의욕이 떨어져 찾아오는 방문객도 번거롭고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걱정어린 연락엔 감사는 커녕 너무 귀찮았다.
몸에 난 상처와 통증보다는 그 오랜 시간동안 쌓아왔던 그 아이와의 추억이 허무해짐이 더 컸다.
나는 이 아이가 다쳤다면 이렇게 행동했을까?
입버릇은 베프였는데 정말 우리 둘다 베프였던가?
이 아이가 나를 필요할 때는 나는 어떻게 했더라?
홀로 고교부터 쌓아올린 언행을 생각하며 내내 고민했고 퇴원하며 결정했다.
그럼으로 나는 사람을 한 명 잃었다.


상실의 의미는 그 한달간 찾아지지 않았다.
한달은 특히 혼란스럽고 회복된 이후에도 의미를 찾기까지는 좀 시간이 걸렸다.
나의 경험은 일하거나 수업하는 도중에도 언뜻언뜻 비틀린 감정으로 드러났다.
기록하고 녹화하고 축어록을 풀어내고 수업하며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조금씩 비틀림을 바로 잡아주었던 많은 인연과 상황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격려와 따뜻함과 진정한 상호작용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주변의 존중의 태도와 일치하는 언행으로 서서히 깨어진 경험의 여러 부분을 분류하고 보듬어 맞춰보며 모양과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허물어진 추억이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동안 그 아이의 발상은 신선하고 재밌었다. 해주는 화장과 옷은 다른 나를 찾을 수 있었다. 나 혼자서는 시도할 수 없는 부분들을 용기를 내서 해 볼 수 있었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일부분의 추억은 무척 고마웠다.
그렇지만 서로 진정 위해주는 관계는 아님이 확인된 이상 더이상 이어나가긴 어렵다.
이렇게 깨어진 경험의 조각을 짜 맞출 수 있는 능력은 오직 나만 할 수 있다.
상실이 지나간 뒤에는 그 걱정과 애정이 가득했던 그 한달간의 입원생활이 떠오르며 그제서야 감사함을 느꼈다.


앞으로도 또 다른 상실을 찾아올 것이며 다시 재경험 할 것이다.
그 고통을 또 겪고 싶지는 않아 두려움도 크다.
그렇지만 이제는 피할 수는 없으니 마주보며 견디어 갈 것이다.
여전히 나는 얼마나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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