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필사적인 도주 : 생존의 해부
5장 신체와 뇌의 유대
6장 몸을 잃으면 자기 self를 잃는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은 놈과 달리 새로운 경험을 삶에 통합시키지 못하고 그 상황에 갇혀 버려 그때부터 성장이 멈춰 버린다. 패튼 장군 밑에서 복무했던 참전 군인들이 내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제작된 시계를 선물했을 때 나는 큰 감동을 받았지만, 그 물건은 그들의 인생이 사실상 멈춰버린 1944년을 기억하려는 것이란 점에서 아주 서글픈 기념품이었다. 정신적 외상을 입으면 그 트라우마가 바뀌지도 않고 바꿀 수도 없이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삶의 구조가 형성되며, 새로운 만남이나 경험들은 모두 과거의 기억에 오염되고 만다.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후에는 이전과 다른 신경계로 세상을 경험한다. 생존자는 내면에 발생한 혼돈을 억누르는 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그 노력 때문에 이 같은 시도는 온갖 신체 증상을 유발해 섬유 근육통이나 만성 피로, 기타 자가 면역 질환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트라우마 치료는 반드시 대상자의 모든 부분, 즉 몸, 마음, 뇌가 모두 고려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몸은 기억한다』 p.99~100
트라우마는 거의 공통적으로 타인의 눈에 띄지 않는 것, 타인에게 자신이 거울을 보듯 따라 하는 대상이 되지 않는 것, 타인이 고려하지 않는 대상이 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서는 안심하고 타인을 자신에게 반영하고 자신이 남에게 반영되도록 하는 능력을 되살려야 하며, 동시에 상대방의 부정적인 감정이 자신을 장악하지 않도록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몸은 기억한다』 p. 108
뇌의 화재경보기 <편도체>는 위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단서를 집어내는 능력이 탁월하지만, 트라우마에 시달리면 특정 상황이 위험한지 안전한지 잘못 해석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잘 지내려면, 상대방의 의도가 순수한지 위험한지 정확히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조금만 잘못 해석하면, 가정에서나 직장 내 대인 관계에 오해가 생겨 괴로워질 수 있다. 복잡한 업무 환경이나 아이들이 제멋대로 날뛰는 가정에서 제대로 기능하려면, 사람들의 기분을 재빨리 파악하고 그에 따라 지속적으로 행동을 조정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경보 시스템에 오류가 생기면 악의 없는 말이나 얼굴 표정에 화를 분출하거나 관계를 끊어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몸은 기억한다』 p. 112
트라우마 치료에서는 과거의 사건에 대처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경험의 질을 높이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의 머릿속에 트라우마 기억이 우세한 이유 중 하나는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있는 곳에 온전히 머무르지 못하면 자연스레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가게 된다. 그 장소가 공포와 고통으로 가득한 곳이라도 마찬가지다. 『몸은 기억한다』 p. 128
우리 사회의 문화는 개개인의 독특한 특성에 집중하도록 가르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상은 개별적인 유기체로 간신히 존재할 뿐이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 기능하도록 구성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 있을 때조차 집단의 한 부분이 된다. 음악을 듣거나(다른 사람이 만든 음악), 텔레비전으로 농구 경기를 시청하거나(선수가 달려가고 점프하면 우리의 근육도 긴장한다), 회의를 앞두고 엑셀로 자료를 정리하는 경우(상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추측한다)에도 마찬가지다.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다른 사람들과의 유대 관계에 쏟는 것이다. 『몸은 기억한다』 p. 135
중요한 것은 '상호 의존'으로, 주변 사람들이 나와 나의 말을 제대로 보고 듣고 있으며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마음속에 내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생리학적인 측면에서 마음이 안정되고 치유받고 성장하려면, 지금 자신이 안전하다는 기분을 강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우정이나 사랑을 제공해 줄 처방전은 어떤 의사도 써 줄 수 없다. 우정과 사랑 모두 복잡하고 아주 힘든 과정을 거쳐 획득할 수 있다. 트라우마가 있어야 남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모임에서 낯선 사람들을 보고 당황하는 건 아니지만, 트라우마는 이 세상 전체를 낯선 존재들이 모인 곳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 『몸은 기억한다』 p. 137
포지스의 이론에서 그 설명을 찾을수 있다. 자율신경계는 세 가지 핵심적인 생리학적 상태를 조절한다. 그리고 특정 시점에 이 세 가지 중 어느 쪽을 활성화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안전하다고 느끼는 수준이다. 첫 단계인 '사회적 개입 유도'는 위험에 처했다고 느끼는 순간마다 본능적으로 가동된다. 이 단계에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과 지원, 편안함을 구한다. 그런데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거나 위험이 갑작스럽게 닥쳐 그대로 맞닥뜨리면 좀 더 원시적인 생존 방식이 되살아난다. 바로 '싸움-도주' 반응이다. 공격을 가한 대상과 맞서 싸우거나 안전한 장소로 달아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상황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거나, 제압당하거나, 붙잡혀서 그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면, 이제 환경과 자신을 차단시키고 에너지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으로 스스로를 지키려 한다. 이 상태를 '얼어붙은 상태', '붕괴 상태'라고 한다. 『몸은 기억한다』 p. 138
빠져나갈 길이 없고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마지막 응급시스템이 활성화된다. 바로 등 쪽 미주 신경 복합체(dorsal vagal complex: DVC) 다이 시스템은 횡격막 아래위, 신장, 장까지 영향력을 행사해 몸 전체의 대사작용을 대폭 감소시킨다. 심장 박동이 뚝 떨어지고(이때 우리는 심장이 '멎었다'라고 느낀다), 숨을 쉬지 못하며, 소화계는 기능을 멈추거나 배출을 유도한다(말 그대로 '하도 겁나서 똥오줌을 지리는' 상황이 된다). 이 시점이 되면 우리는 상황과 분리되어 무너지고 얼어붙어 버린다. 『몸은 기억한다』 p. 140
안타깝게도 우리의 교육 제도나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방법은 이 감정 개입 시스템을 무시하고 대신 마음의 인지적 기능을 끌어내는 데 주력한다. 분노, 공포, 불안이 이성적 사고 능력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충분한 증거들로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촉진하기에 앞서 뇌의 안전 체계부터 재가동시켜야 하는 필요성을 간과하는 프로그램들이 많다. 합창과 체육 수업, 쉬는 시간, 몸을 움직이고 뛰놀고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은 아이들 교육 과정에서 절대 배제되지 말아야 한다. 어린이가 반항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멍한 모습 또는 극도로 분노하는 모습을 보이면, 설사 아이가 극심하게 짜증을 내거나 당황스러워할지언정 이 '나쁜 행동이 아이가 심각한 위협에서 살아남으려고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임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몸은 기억한다』 p. 146
사람들이 괴로울 때 가장 일반적으로 보이는 반응은 자신이 좋아하고 믿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 계속 견디도록 용기를 줄 사람을 찾는 것이다. 또 자전거를 타거나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는 등 신체 활동으로 마음을 진정시킬 수도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배가 고플 때 누군가가 먹을 것을 주고 추울 때 이불을 덮어 주고 다치거나 놀랐을 때 어르고 달래 줄 때의 기분을 처음 느낀 순간, 이와 같은 감정 조절 방식을 배운다.
그러나 사랑이 담긴 눈으로 바라봐 주는 사람이나 자신을 보면 미소가 번지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면, 필요할 때 도와주러 달려와 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면(도움 대신 "그만 울어, 안 그러면 진짜 제대로 울게 만들어줄 거다"라는 말을 들었다면), 자기 자신을 돌볼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래서 약물이나 알코올, 폭식, 몸에 상처를 내는 것 등 조금의 위안이라도 될 만한 일은 무엇이든 시도해 본다. 『몸은 기억한다』 p. 151
트라우마로 발생하는 이러한 반응은 중요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이 평범한 감각 경험을 하나로 통합시켜서 자연스러운 감각을 느끼며 살아가고 몸이 안전하고 온전한 상태임을 느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몸은 기억한다』 p. 153
환자들은 트라우마 자체에 대한 반응으로, 그리고 트라우마를 겪은 후 오랜 세월 지속된 두려움에 대처하기 위해 신체의 직관적인 느낌과 감정을 전달하는 뇌 영역의 기능을 정지시키는 법을 습득한 것이다. 이 영역(뇌에서 스스로 감각을 인지하는 영역 - 내측 전전두엽, 피질과 전망 대상, 두정엽, 섬엽)의 활성은 두려움을 동반할 수도 있고 두려움을 더 또렷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모든 감정과 감각을 인식하는 곳이 바로 이 영역이며, 자기 인식과 자신이 누구인지 느끼는 감각의 토대가 된다. 우리가 목격한 것은 비극적인 적응의 결과였다. 끔찍한 감각을 차단하기 위해 삶을 온전하게 느끼며 사는 기능마저 없애 버린 것이다. 『몸은 기억한다』 p. 156
20세기의 위대한 신체 치료사로 꼽히는 모세 펠든크Moshe Feldenkrais가 한 말도 떠올랐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까지는 원하는 걸 할 수 없습니다." 이 말들에 담긴 의미는 분명하다 현실을 느끼려면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하고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에 일어나고 있는지 인식해야 한다. 자기 감지 시스템이 망가졌다면 다시 활성화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몸은 기억한다』 p. 157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뇌의 역할은 우리 내부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계속 지켜보고 평가하는 것이다. 그 평가의 결과는 혈류를 따라 이동하는 화학적 메신저와 신경의 전기적 메시지를 통해 전달되어 신체와 뇌 전반의 미묘한 변화와 급격한 변화를 유발한다. 보통 이러한 변화는 의식적 인정보의 유입이나 인식 과정 없이 이루어진다. 뇌의 피질 아래에 놓인 각 영역들은 호흡과 심장 박동, 소화, 호르몬 분비, 면역 체계를 놀라울 만큼 효율적으로 관리한다. 그러나 지속적인 위협을 겪거나 위협을 그냥 인식하기만 해도 이러한 시스템의 기능이 제압될 수 있다. 그 결과 연구자들이 트라우마 환자들에게서 찾아내고 증명한 수많은 신체적 문제가 발생한다. 『몸은 기억한다』 p. 159
동물적인 뇌 영역이 생존을 위해 싸우는 상태로 고착되어 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통제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 동물적 뇌의 깊숙한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의 느낌을 좌우한다면, 그리고 우리의 신체 감각이 뇌의 피질하영역(잠재의식)에 의해 조정된다면, 실제로 우리는 이 영역들을 어느 정도로 통제할 수 있을까? 『몸은 기억한다』 p. 161
치료에서 핵심이 되는 세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트라우마로 차단되고 굳어 버린 감각 정보를 끄집어낸다.
- 환자가 내적 경험에서 나온 에너지에 친숙해지도록(억누르지 않고) 도와준다.
- 환자가 움직이지 공포심을 느껴 꼼짝 못 하거나 억눌러 버렸거나, 몸을 움직이지 못해서 미처 실행하지 못했던 자기 보존을 위한 신체 활동을 기회를 제공한다. 『몸은 기억한다』 p. 163
트라우마 희생자들은 자기 몸의 감각에 익숙해지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 회복될 수 없다. 깜짝 놀란 상태로 산다는 건 늘 경계 태세에 있는 몸으로 살아간다는 걸 의미한다. 화가 난 사람들은 화난 몸으로 살아간다. 아동 학대 피해자들의 몸은 편안함과 안전감을 느끼는 방법을 찾지 못하는 이상 늘 긴장하고 방어한다. 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각과 신체가 주변 세상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신체적인 자기 인식은 폭군처럼 제멋대로 구는 과거를 흘려보내는 첫걸음이다. 『몸은 기억한다』 p. 170
감각 인식은 처음에 상당히 고통스러울 수 있고, 몸을 웅크리거나 방어자세를 취하고 있던 옛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 수 있다. 해소되지 않은 트라우마가 신체로 재 실현되는 것으로, 이 같은 반응을 유발하는 자세는 환자들이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취했던 자세에 해당할 확률이 매우 높다. 이 시점에서 수많은 이미지와 신체 감각이 환자에게 물밀듯이 쏟아질 수 있으므로 치료사는 환자가 과거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정신적 외상을 입지 않도록 그 거대한 감각과 감정의 파도를 저지할 수 있는 기술에 능통해야 한다. 『몸은 기억한다』 p. 170
환자들에게 그 고통스러운 신체 반응에 대처하는 기술을 가르쳐 주는 대신 아빌리파이나 자이프렉사, 세로켈 같은 약을 처방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약물은 감각을 둔화시킬 뿐, 환자에게 해로운 영향을 발휘하는 원인을 해소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몸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주지도 못한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가라앉히려고 스스로 찾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체적, 성적 폭력을 경험한 피해자들은 이 지점에서 딜레마에 부딪힌다. 누군가의 손길을 너무나 갈구하지만, 동시에 신체 접촉에서 두려움도 느끼기 때문이다. 이 경우 마음이 신체 감각을 느끼도록 해 줄 재교육이 필요하며, 신체가 접촉을 견디고 거기서 비롯되는 편안함을 즐기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훈련을 통해 신체 감각을 심리적 사건과 연계시킬 수 있다. 그 이후에는 서서히 자기 자신과 다시 연결될 수 있다. 『몸은 기억한다』 p. 171
다른 사람과 제대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개별적인 인격체로, 그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특정 동기와 의도를 별개로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혼자 힘으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다른 사람도 나름의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트라우마는 이 모든 능력을 뿌옇고 흐릿하게 만들 수 있다. 『몸은 기억한다』 p. 173
극도의 두려운 상태에 빠진 신체증상들이 스쳐 지나갔다.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 놓여 있더라도 살기 위해서 적응하려고 바꾸려고 한다.
가볍게 두려움/공포대상을 마주쳤다면 나를 위하는 대상에게 위안을 찾거나 내 편으로 상황을 바꾼다.
내 편이 도움이 안 된다면 혼자 맞서 싸우거나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듯 도망가서 문제를 피한다.
그러나 결국 피해도 피해도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알게 되면 반송장처럼 늘어지거나 피할 상황이 오더라도 피하기를 포기한다.
그 상황에 적응한다는 건 경보 사이렌이 쉼 없이 울리는 뇌의 스위치를 끄고 나서는 몸도 노트북처럼 절전 모드로 바뀐다. 환경을 바꿀 수 없으니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몸의 시스템을 바꾸는 거다. '얼어붙는 반응'이 여기서 나왔다.
절전모드 시스템이기에 얼어붙는 반응은 문제가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오감이 둔화된다는 건 감각 자극이 10개나 있어 입력 전송되더라도 로딩 후 처리는 2~3개만 된다.
그 나머지 7~8은 시스템 오류가 걸려 미궁 속에 떨어져 자극에 대한 반응이 떨어진다.
나의 경우, 절전모드의 몸 상태는 혈액순환, 식욕부진, 소화기능 장해, 둔한 감각으로 몸 전체의 기능을 떨어뜨리며 자극을 최대한 덜 받아들일 수 있게 몸상태를 다시 만들었다. (특별한 예로 누군가 고백하더라도 소리가 안 들리고 외국어처럼 해석이 어려웠다. 청력이 나쁘진 않다 / 잘 먹던 찐 밤을 동생이 빼앗아 휴지통에 넣었다.
누나를 따라 나머지 반쪽을 먹어보곤 상했는데 누나가 잘 먹는 게 이상해서 그랬단다. 맛도 향도 이상했는데 나는 그걸 몰랐다.)
나는 이러했기에 절전형 몸뚱이를 병원과 한의원에서 해결해보려고 했고 결론은 조금 감각기관과 소화기능이 떨어져 태어난 걸로 잠정 결론을 내려 평생 관리해야 하는 체질이라 생각했다.
그나마 좋은 것은 항상 내 반응이 무던하고 둔감해서 약간 뾰족하게 구는 예민한 지인에게도 무던하게 다가갈 수 있었고 편하게 생각했으며, 무릎이나 팔꿈치에 피가 나더라도 옷에 가려지면 상대방이 모를 정도로 쾌활하게 할 걸 다 하고야 마는 성정을 지녀 나는 강인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문제를 풀 때와 책 읽을 때는 그 외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어 그 과정을 좋아하다 보니 고등학교 때 성적까지 자기 주도적 학습으로 어느 정도 유지하였다. 절전모드형 몸뚱이를 고등학생 때까지 이렇게 활용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만나는 그때의 그 시절 친구들에게 한결같이 나는 쉬는 시간마다 문제집 푸는데만 골몰해 편하게 이야기할 여유가 없어 보였다고 한다.
작고 소중한 인맥을 관리하다가 사회성의 발달은 대학교 때 더욱 풍부해졌고 고등학교 때까지의 친구와는 서로의 비밀을 꺼내 놓으면서 더욱 돈독해져 갔다.
스트레스의 원천인 집에서 멀어진 탓일까?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싶어 죽어라 공부하는 그 시절만큼은 공부하지 않았다. 성적은 멀어져 갔다.
노는 즐거움을 동아리 활동과 봉사활동으로 채워갔다.
선배 후배 할 것 없이 온전히 그 모습으로 좋아해 주는 터라 내 절전 모드의 몸뚱이를 점차 해제했다.
다만 문제는 어쩔 수 없이 동아리장을 맡아서 책임감 있게 하기 위해 80학번대 선배까지 소통하면서 무던하게 지내야 했다. 세대의 차는 엄청났지만 어렵고 불편해하는 후배들을 다독이며 동아리를 해야 했다. (원하는 과까지 왔는데 학교를 그만두기에는 너무 아까웠으니까..)
여기서 여기까지는 운영진이나 윗 선배들한테, 저기서 저기까지는 후배들이 공유하는 터라 비밀은 엄청났지만 무던하게 받아내야 했다.
내가 받아줄 수 있는 한계치까지 다다르자 예전 고통을 차단하는 방법까지 동원해서 절전모드의 몸뚱이로 돌아갔다.
현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좀 고생하지 싶어서 늘 고민은 들어주되 비밀을 유지하고 무딘 내가 상대하는 게 언쟁 없이 평화롭게 끝낼 거 같아 가장 효율적이게 보였다.
다만 감정은 다르게 억지로 웃고 먹으면 체하는 경우가 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때도 꽤 늘씬했다.
현재는 절전 모드의 몸뚱이가 변하고 있다. 절전 모드 해제 중인 몸은 모든 감각이 활성화되어서 맛을 느끼고 듣고 싶은 소리에서부터 듣고 싶지 않은 소리까지도 더 잘 들린다.
그렇지만 이미 절전으로 살아서 나의 감각이 어디까지 살아날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도 활성화된 몸 상태는 자극의 빨리 반응하며 사실상 조절은 어려워한다.
스마트폰으로 따지면 예전에는 터치를 해도 잘 눌리켜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조금만 터치하더라도 반응이 빠르고 민감해서 누르려 하지도 않았지만 스침 정도로 접속이 되는 그런 상태임을 자주 느낀다.
생활의 리듬과 활력은 점차 더 생겨가서 그에 따른 조절은 다시 배우고 있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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