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님, 성모님의 깊은 사랑이 있었기에 한 가정 안에서 주님의 축복과 은총 속에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살다 보니 어찌 좋은 일만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저희 두 사람은 친구 결혼식장에서 인연이 되어 30년째 잘 살고 있습니다.
첫 아이를 낳고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 제 부인은 시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보이지를 않아 안경조차 끼울 수 없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좌절감.... 그저.. 앞 날이 캄캄하게만 보였습니다.
고민 끝에 아이를 유산하고 치료부터 받아보자고 하였지만 부인은 한사코 아이는 지울 수 없고 아이를 낳고 치료를 받아보겠다고 하였습니다.
해서 둘째 아이는 건강한 모습으로 순산하게 되었지요.
혼자서 생활하기란 그리 쉽지가 않았습니다.
아이를 업고 버스를 혼자서 탈 수가 있나 혼자서 길을 걸을 수가 있나 불편한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발을 헛디뎌 개울가에 거꾸로 떨어져 머리를 심하게 다쳐 머리에 바느질을 많이 해놓고 얼굴은 시퍼렇게 퉁퉁 부어서 보이지도 않는 눈은 아예 딱 붙어있더군요.
보이질 않으니 몸에 멍 자국은 잠잘 날이 없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세상살이는 살아 본 자 많이 느낄 수 있다고 하셨나요?
참담한 생활 속에서 희망이라고는 보이질 않더라고요.
답답한 심정에 큰 병원이라도 가봐야 되기에 소견서 좀 써달라 했더니 투덜거리는 의사의 모습.
서울에 있는 첫 번째 병원을 가게 되었습니다.
검사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병원도 답변의 결과는 똑같은 결과였습니다.
수술도 안되고 이식 수술도 안된다는 답변밖에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구는 정상인데.. 카메라로 말하면 필름이 타버린 상태라는 것입니다.
시신경이 소멸된 것이지요.
이런 생활 속에서 온몸으로 신경을 써야 하니 신경은 예민해질 때로 예민해지다 보니 머리에 두통은 날이 심해져가고 눈에 도움이 되는 약은 없고 진통제를 먹을 수밖에 없었지요.
진통제와 청심환은 박스로 대기해 놓게 되었지요.
눈동자의 초점은 흐려지게 되고 눈은 흔들리기 시작하고 흔 눈동자가 상하로 움직이는가 하면 몸을 움직일 때면 온몸으로 신경을 써야 하니 눈동자가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떠는 모습은 사람의 눈이 아니었습니다.
희끄무레하여 죽은 동태눈으로 보였습니다.
본인도 신경이 예민해지다 보니 불면증은 심해져가고 덕분에 신경성 위궤양으로 고생 좀 해보게 되었지요.
큰 아이는 커서 초등학교에 다니다 보니 어린이대공원으로 소풍을 간다고 엄마하고 같이 오라고 하더군요.
참으로 난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엄마가 아이 손을 잡고 가야 되는데...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소풍을 가게 되었지요.
저는 퇴근해서 무사히 오기를 기다리면서 저를 낳아주신 부모님 마음을 난생처음 가슴으로 헤아려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병원은 다니지 않기로 포기했지요.
가봐야 희망적인 답변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생활하던 중 저희 아버지께서 대세를 받고 위암으로 선종하셨습니다.
선종하시면서 '큰 아가야 넌 보이지 않으니 집안을 더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말씀을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노력을 많이 하더군요.
제 신앙생활이 시작된 결정적인 동기는 대세를 받고 선종하신 저희 아버지를 위해 모르는 분들이 많이 오셔서 기도해 주시는 모습에 감사한 마음으로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모르는 분도 와서 기도해 주는데 자식인 저는 아버지를 위해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게 되어 저도 '영세를 받고 기도를 하면 되겠지.' 하는 결심으로 삼우제를 지내고 다음날부터 신앙생활에 첫걸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와 되돌아보니 콩나물 신자가 되었습니다.
거룩한 성경 말씀을 먹으면서 세월이 흐르다 보니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성당으로 이끌어 주는 이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불면증이 심해 새벽에야 잠이 들어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하지만 새벽 6시 미사에 기적처럼 가게 되더라고요.
(그 당시) 직장이 휴게소다 보니 빨간 글씨는 더 바쁜 날이었습니다.
저는 하체가 약하여 오래 걷기도 서 있기도 힘이 들었는데 놀라운 일이 본인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어쩌다 주일미사를 거르게 되면 그날은 잠을 잘 수가 없게 되면서 '주님께서 치유해 주시는구나.'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부인은 영세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거룩한 성경 말씀이 저희 가정에 조금씩 녹아들기 시작하면서 신자들의 모습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던 중에 집에서 눈을 감고 조금씩 다녀 봤지만 안 보이는 눈으로 생활한다는 게 보통일이 아녔음을 체험하게 되면서 많은 생각 끝에 힘들어 힘들어하는 부인에게라도 좀 더 관심을 가져줘야지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말을 어떻게 하면 될까 결심과 다짐 비슷하게 말을 하게 되었죠.
다른 분들은 봉사도 하면서 사는데 나는 그렇지도 못하고 당신한테라도 잘하면서 살아 보겠다고 했지요.
나하고 살기 힘들면 떠나고 싶으면 언제라도 보내 줄게요.
하지만 아무리 힘들더라도 헤어지자는 소리는 안 할 테니 말이요.
'당신도 힘들 텐데 고마워요...' 이런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부인께서 하시는 말씀, '나는 동정심이 싫어요... 동정심은 싫어요.' 지금도 그 답변은 너무나도 선명하거든요.
힘든 것은 나도 마찬가지로 답답하고 앞이 꽉 막혀 미칠 것만 같은데 순간 강하게 다가오는 소리같이 부인에게 잘하려면 성모님께 하듯 예수님께 하듯이 하라는 생각이 강하게 오더니... 그다음 날에도 그 말씀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으면서 늦은 밤에 집에 가게 되었는데 부인은 거실에 있더군요.
신기하게도 얼굴이 뽀얀 하고 예쁘게 보이더군요.
헛 것이 보이나 싶어 이상해서 머리를 흔들어보고 눈을 감았다 떴다 반복해 보았지만 마찬가지로 예쁘게 보였습니다.
그 이후로 그 모습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바뀌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거룩한 성경 말씀이 아무런 느낌도 뜻도 이해하지 못하던 말씀이 한 구절 한 구절 마음에 와닿으며 저희 가정에도 말씀이 녹아들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희망의 자리가 생기게 되더군요.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기쁜 날이 많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긍정의 힘과 희망을 갖는다는 게 어떠한 힘보다 강하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거룩한 성경 말씀 안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내적인 것이 변하다 보니 외적인 것이 해결되기 시작하더군요.
부인의 눈동자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며 서서히 본래 모습으로 회복되면서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초점이 생기고 까만 눈동자가 중앙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진통제도 안 먹게 되고 시력은 정상은 아니지만 반은 보인다고 해도 과장은 아닙니다.
집안에서 여성들이 하는 밥, 반찬, 세탁, 다림질, 바느질, 집안 청소 등등 모든 것을 정상인 못지않게 감각적으로 다 잘 해내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온갖 지혜 주시고 슬기로운 은총 속에서 마음의 눈을 뜨게 해 주셔서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영적으로 모든 것이 풍요로워졌음에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이름은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부인의 어려움이 있었기에.. 길이요, 진리요, 생병이신 예수님과 성모님을 빨리 알게 되었지요.
세상이 주는 평화보다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임을 알게 된다면 신앙 공동체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때론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남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하면서 지내는데 꾸리아 단장으로 선출되는 순간부터 두려움이 앞서기 시작하였습니다.
혹시 연도 할 때 나보고 선창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그러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근심 중에 있는 것을 아시고 성모님께서 능력의 영을 보내 주셨습니다.
때는 새벽 3시경에 잠에서 깨었는데 머리가 그렇게 맑을 수가 없었지요.
아무런 생각도 없고 기분이 좋고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이 보이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더니 문득 연도 책이 생각이 나서 펼쳐 보았지요.
음이 나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참으로 신기하데요.
그래서 앉은 자리에서 혼자서 연도를 2번이나 해보게 되었지요.
그리고 부르고 싶은 성가를 집에서 혼자 불러 보려고 해도 음이 나오질 않아 한구절도 못했는데 3절까지 불러도 신기하게 음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소리가 본인의 입에서 분명 나오고 있었습니다.
성모님 저는 자랑스러운 천주교 신자로 성모님의 단체에 머물면서 겸손의 어머니 품에서 살고자 합니다.
2018.05.25 성모님의 밤에... 베드로
231216 과거의 회상 (0) | 2023.12.16 |
---|---|
231215 독서모임 발제를 하면서 (0) | 2023.12.15 |
20231208 서럽다 (1) | 2023.12.09 |
마음의 공허함. 그리고 상처와 회복 (0) | 2020.06.17 |
'자신(나)'을 믿어주세요 (0) | 2020.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