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4 너무 애쓰지 않고 나답게
- 매번 다른 모습의 나, 혹시 다중인격인가?_자기복잡성
우리는 '나'라는 사람을 일관성 있는 하나의 덩어리로 정의하고 싶어 합니다.
MBTI 검사에 따라 열여섯 가지 유형 중 하나로 정의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는 어떤 상황이든 누구와 함께 있든, 전형적인 나의 모습이 존재하길 바랍니다.
이렇게 일관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과 달리 우리 안에는 다양한 모습이 존재합니다.
저의 경우에도 말 잘 듣는 엄마의 착한 딸, 권위 있는 말투를 쓰는 대학 강사, 애교 많은 아내, 장난기 넘치는 이모, 진지한 작가 등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요.
가까운 사람들 앞에선 우스갯소리도 잘하고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대범한 제가 있는가 하면,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선 쉽게 말도 못 꺼내는 소심한 저도 있습니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너무 달라서 이질감이 느껴질 때도 있지요.
그럴 때마다 혼란스럽고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나다운 건 뭘까?
고민에 빠지며 한결같은 내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하지요.
하지만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 잘 알 수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사실 하나의 '나'는 없거든요.
나는 다양한 모습의 총합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나의 총체를 '자기'라고 부르지요.
그리고 이런 다양한 모습이 많을수록 '자기 복잡성'이 높다고 이야기 합니다.
반면에 자기 복잡성이 높은 사람은 다양한 자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역할, 취향, 능력, 외적인 모습까지 말이죠.
자기 복잡성은 삶의 다양한 어려움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줄 수 있습니다.
오로지 좋은 대학을 목표로만 살아온 고3 학생은 수능을 망치면 인생이 끝났다고 좌절합니다.
하지만 일찌감치 자신의 랩에 재능이 있다고 깨달은 학생은 부모님 몰래 음악을 준비합니다.
비트도 찍고 가사도 쓰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킵니다.
수능시험을 망쳐도 괜찮습니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나의 가치를 높일 다른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인으로서의 자기가 인생의 전부인 사람은 직장 상사나 동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인당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가족, 친구, 모임 회원과 같이 다양한 관계 속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은 직장 내 인간관계의 서려움을 견딜수 있습니다.
집에 가면 나를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고, 회사에서 힘들었던 일을 술 한잔 기울이면서 털어낼 친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정 힘들면 그만두면 됩니다.
직장인으로서의 자기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일에 도전 할 자기도 있으니까요.
누군가의 연인으로만 살아온 사람은 이별을 맞으면 세상이 무너집니다.
다시는 누군가를 만나 사랑할 수 없을 것 같고, 영원히 외로움의 덫에 빠져 불행하게 살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친구이기도 한 사람은 애인과 헤어지고 친구들과 노래방을 갑니다.
소리를 지르고 감정을 쏟아내며 떠나간 인연을 조금씩 정리하지요.
자기가 복잡해서 좋은 점은 하나의 자기가 실패할 때 다른 자기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느낌/생각
다양한 자기의 모습은 상황과 대상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행동한다.
근원이 되는 '나'는 씨앗이 자리잡기 위한 뿌리를 내리면서
근본이 되는 토대를 마련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자라나면 굵직하게 갈라지며
잔가지로 갈래갈래 갈라져 '분화'를 거듭한다.
나무야 말로 하나의 덩어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거 같다.
퍼스널 리셋도 작년에는 퍼스널이 좀 더 성숙하게 변화했음 좋겠다는 마음에 질문에 답하려던 책이었는데 세상에 더 좋은 책이 많아서 그런지 이제는 눈에 차지 않는다.
퍼스널 리셋의 질문을 한 후에 다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업-신고은' 책의 일부를 봤다.
최근 현타가 왔던 질문에 대해 답을 하면서 생각한건데, 나는 현재는 거의 일관성있는 역할을 도맡아 하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요즘은 자기복잡성이 적은 상태이다.
나의 역할은 장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사람마다 달라지기도 한다.
기대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관계의 감정선에 의해 좀 더 부각되는 부분이 역할의 특성으로 부여받는다.
자기 복잡성이 여러 역할을 상황과 상대에 따라 꺼내 쓰는 거로 이해하였다.
복잡성을 개발하려면 내가 모르는 다양함을 받아들이면서 습득해나갈 수 있을 거 같다.
현재 나는 다양하지 않은 역할이다.
도전을 해볼까하다가 아직도 무엇을 특별히 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게 들지 않는다.
환경 탓이 크려나?(쓰고 있는 당시 대전에는 전염병 확진자가 하루에 6000명을 돌파했다.)
그럼에 기존의 협소한 관계들이 긴밀한 소통을 하고 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의지를 통해 현실에서도 만족스럽게 생활하고 있다.
주변 사람의 성향이 각각 다르기에 내가 초점을 맞추는 공감와 생각 코드는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겹치는 목표를 함께 수행해 나가면서 일과가 풍부해진다.
때때로 주변사람들이 익숙하지 않은 것을 권하거나 시도하려 할 때면 친밀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큰 거부감없이 호기심있게 관심사를 공유하거나 받아들이기 쉬워지는 거 같다.
부여받은 역할에 실패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 선에서 최선 또는 차선을 해보기도 한다.
실패를 하더라도 할 수 있는 만큼 해봤으니 후회는 없을테니.
또 하나의 이유는 실패해도 다른 자기로 살아갈 수 있음을 알지만 성공한 자기에만 매몰되어 있기는 싫다.
조금 더 개발해보고 싶다.